본문 바로가기
알피의 생각/습작

늦었다고 생각할 때 진짜 늦었다. - 33살 인생의 기로에서

by 알피 2021. 4. 1.

일흔의 늙은이가 있다.

그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꿈꿔온 꿈이 있었다.

오랜 친구의 죽음으로 그 꿈인 발레를 시작한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의 드라마 '나빌레라'의 주인공인 '심덕출' 할아버지 얘기다.

 

우리는 늘 후회한다.

'그때 그러지 말걸....',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최근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이 아주 활발하니 '그때 팔걸.....', '그때 더 사둘걸....', '그때 팔지 말걸.....' 등등 과거의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고 아쉬워한다.

그러곤 이내 농담처럼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할 거다 저렇게 할 거다 하며 실없는 농담으로 후회와 아쉬움을 무마해보곤 한다.

 

 나도 그랬다.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 '그때 그러길 참 잘했지.' 하는 생각보다 후회와 아쉬움이 더 많았고 때로는 상황에 대한 원망으로, 때로는 어쩔 수 없었다며 누구라도 그랬을 거라고 자기 합리화에 다다른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이런 의미 없는 행동은 계속 반복되어갔고 나는, 내 마음은 마침내 지쳤다.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았고 무엇을 먹어도 맛있는 줄 몰랐다.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한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지리라 기대조차 되지 않았기에 무의미한 에너지 소모라고만 생각했다.

 어제는 그저께와, 오늘은 어제와 같았고 내일 역시 오늘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느낀 시점부터 나는 삶이 내 삶이 아니었다. 그저 죽는 게 무서워서 그것조차 용기 낼 수 없을 만큼 무력한 사람이라 굴러가는 대로 내가 이끄는 삶이 아니라 삶이 이끄는 대로 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덧 지금에 다다라 있었다.

군대 전역 후 생계유지를 위해서 곧바로 경제활동을 해야 했던 나는 이미 그 시절부터 포기하는 법부터 배웠던 것 같다. 더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을 포기했고, 연애를 포기했다. 그 흔한 제주도 여행한 번 가지 못했다. 모든 게 나에게는 사치였고 언제쯤 나아질지 모를 현실을 붙잡고 그 현실이 밀어내는 대로 굴러다녔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밝은 사람이었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야만 했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버틸 수 없었기에 나는 사람들 몰래 마음속에 큰 바위를 얹어놓고 깃털처럼 털어내는 듯이 살았다.

 

 친구들을 만났다.

다들 나랑은 달랐고, 나는 또다시 자괴감에 자존감을 부수기 시작했다.

소위 말해 '현타'가 왔다.

 그럼에도 나는 제자리였다. 나는 내가 열심히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서해안 갯벌처럼, 러닝머신 위에서 걷듯이 제자리였고 걷지 않으면 그마저도 넘어지고 빠지는 것이었다.

 

 그러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고, 생각도 느끼는 감정도 너무나 똑같았다.

나는 숨을 쉬고 싶었고, 그 당시 채용공고를 보며 다른 곳으로 갈까 했지만 이내 현실과 상황으로 합리화하며 또 포기하려 하고 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그 친구가 얘기했다. "그래도 나는 네가 해봤으면 좋겠어."

 

 그 한마디였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수없이 내게 해 왔던 '힘내라', '할 수 있다', '잘될 거야' 따위의 말과는 달리 그 친구가 해준 얘기가 나를 관통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던 계획을 입 밖으로, 텍스트로 꺼내놓기 시작했고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며 시작했다.

 

 운이 나쁘지만 아주 영 나쁘지만은 않은 모양으로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도움을 받고 앞으로도 도움을 받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똑같은 상황이었고 똑같은 나였기에 생각이 너무 많았고 불안했고 두려웠고 겁이 났다. 마음이 더 무거워 다 포기했을 때 보다 더 힘들었다.

 며칠 전 내가 준비 중인 것에 몸담고 있는 분에게 용기 내어 SNS 계정으로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는데 아주아주 고맙게도 너무나 착하게도 답변을 주며 본인이 운영하는 1:1 화상 미팅으로 대화를 나눠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주어 미팅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늦었습니다. 늦은 게 맞아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안 하실 건가요? 포기하실 건가요? 늦었지만 지금이 남은 날 중에서 제일 빠른 날 이잖아요!"

 

 웃음이 났다. 힘이 나서 응원이 되어서 웃음이 났다기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그리도 쉽게 말했던(그렇게 말하고 들었던 말들이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얘기였다.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고 얻어맞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복잡한 것이 모두는 아니지만 이내 사라졌고,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고민을 했는지 불필요한 감정을 갖고 있었는지 정리가 되었다.

 

김연아 선수의 명언 같은 얘기가 떠올랐다.

 

'그냥 하자' 일단 움직이기로 했고 부딪치기로 했다.

그냥 하자 그냥

33살. 나는 그냥 해보려 한다. 늦었지만 남은 내 생에서 가장 빠른 오늘이니까.

댓글